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의 두뇌에 생기는 변화
다중 언어 사용자들은 보통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얼마 전 내가 살고 있는 파리의 동네 빵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인이 내게 "페이스트리를 몇 개 살 것인지"를 물었는데, 내게서 갑자기 프랑스어가 아닌 중국어 대답이 튀어나왔다. 나의 주 언어는 영어다. 중국어는 몇 년간 거의 쓴 일이 없다. 그런데 대부분 프랑스인들이 사는 이곳에서 갑자기 중국어가 튀어나오다니… 나는 몹시 당황했고, 연거푸 주인에게 사과를 했다.
다중 언어 사용자들은 보통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하지만 때로는 갑작스럽게 사고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저변에는 우리 두뇌의 작동 방식이 놓여있다. 다중 언어 사용자들이 머릿속에서 언어를 다루는 방식은 복잡하고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과도 다르다. 그들이 뭔가를 말하려 할 때는, 알고 있는 언어들이 동시에 활성화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의도와 달리 몇 개의 다른 언어가 섞이는 간섭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간섭은 어휘뿐 아니라, 문법이나 억양에서도 나타나기도 한다. 브뤼셀 자유대학 선임 연구원인 마테 드클레르크는 "연구는 이중 언어 또는 다중 언어 사용자들이 말을 할 때 알고 있는 모든 언어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와 영어를 모두 구사하는 사람이 '개'를 말하려 할 때는 영어 단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단어도 함께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그래서 화자는 언어를 제어해야 한다. 보통은 관련 없는 언어를 두뇌에서 억제하는 방식으로 여러 언어가 섞이지 않도록 한다.
이와 관련된 실험이 있다. 실험에선 두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색깔 이름을 맞추도록 시켰다. 화면에 처음 나온 색깔을 하나의 언어로 표현하고, 다음에 나온 색깔은 다른 언어로 표현하게 했다. 그런데 이 실험 과정에서 참가자의 언어 및 주의력과 관련된 두뇌 부위 전기 활동이 급증했다. 하지만 이 제어 체계에 장애가 생기면 혼선 등의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 하나의 언어를 충분히 억제하지 않으면 다른 언어를 쓰던 중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다. 다중 언어 사용자들은 특정 언어의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게 아니라, 모든 언어가 머릿속에서 활동 중인데 그중 원치 않는 것을 의식적으로 억제한다.
벨기에 출신인 드클레르크도 이런 상황을 경험하곤 한다. 벨기에에는 네덜란드어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함께 구사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그가 독일에서 일하다가 벨기에로 갈 때는 다양한 언어 사이에서 언어 전환 노력이 펼쳐진다. 그는 "운행 과정에서 독일과 프랑스를 거치는 기차를 탄다"라고 했다.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쓰다가) 열차가 브뤼셀을 지날 때는 언어가 네덜란드어로 바뀝니다. 약 세 시간 동안 회로가 바뀔 때마다 저는 언어를 바꿔야 하죠." "그런데 항상 약간 어긋나는 부분이 있어요. 전환을 바로 따라잡는 게 불가능했죠." 언어 전환 시나리오는 다중 언어 사용자들의 언어 제어를 연구에 많이 사용된다. 사람이 언어를 전환할 때 생기는 오류는 우리가 머릿속에서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고 통제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대학의 정신과 교수인 타마르 골란은 수년간 이중 언어 사용자들의 언어 제어를 연구해 왔다. 그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 다른 것들이 꽤 있다. 그녀는 "이중 언어 사용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독특한 점 중 특정한 맥락에서 말하는 게 느려지는 것"이라며 "주 언어를 너무 억제했을 때 나타난다"라고 말했다. 즉 다중 언어 사용자의 주 언어는 특정한 맥락에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앞에서 말한 색깔 이름 말하기 실험의 참가자들은 첫 번째 언어(주 언어)에서 두 번째 언어로 전환할 때보다, 두 번째 언어에서 다시 첫 번째 언어로 돌아갈 때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있었다. 그녀는 실험에서 스페인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하는 이들의 전환을 분석했다. 그녀는 그들에게 영어로만 된 단락, 스페인어만으로 된 단락, 그리고 두 언어가 마구잡이로 섞인 단락을 큰 소리로 읽게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눈앞에 텍스트가 있었지만, 실험 참가자들은 여전히 "침입 오류"를 일으켰다. 예를 들어 영어 단어 "but" 발음에서, 갑자기 같은 뜻을 가진 스페인어를 말한 것이다. 이러한 오류는 두 개의 언어가 섞인 단락을 소리 내 읽을 때 나타났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침입 오류의 상당 부분이 참가자가 "건너뛴" 단어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연구팀은 시선 추적 기술을 통해, 실험 참가자가 대상 단어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이런 실수를 했다는 것을 찾아냈다. 그리고 참가자 대다수의 주 언어는 영어였지만, 스페인어보다는 영어 단어에서 이런 침입 오류가 더 많이 나타났다. 골란은 이를 주 언어의 역전으로 설명했다. 그녀는 "평소 익숙하지 않은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게 갑자기 더 좋아지는 상황과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를 지배력 역전이라 부릅니다. 정말 특이하고 신기한 현상이죠."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 성인이 새로운 언어에 몰입하면, 모국어 단어 체계와 더 멀어질 수 있다. 골란은 이중 언어 사용자가 하나의 대화 중에 언어를 전환할 때 지배력 역전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중 언어 사용자는 주 언어를 억제해서 두 가지 언어를 모두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너무 과하게 억제하다 보니, 주 언어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속도가 부 언어보다 느려지는 결과가 생기기도 하죠." 언어 간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지다 보면, "언어 간섭"이 생길 수 있다. 이 간섭은 단어뿐만 아니라 발음과 문법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골란은 실험을 통해 지배력 역전이 발음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찾아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서 단어를 맞는 언어로 읽긴 했지만 억양이 잘못된 경우가 나타난 것이다. 이 역시 스페인어 단어보다 영어 단어를 읽을 때 더 많이 나왔다. 골란은 "이는 언어 제어가 다양한 수준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라고 말했다. "그리고 억양 체계와 당신이 단어를 끌어오는 어휘 체계가 서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죠." 그리고 다른 언어 환경에 몰입하는 경우, 모국어의 문법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캐나다 맥길 대학에서 신경언어학을 공부한 작가 크리스티나 카스파리 안은 "뇌는 영향을 받아서 잘 변화하기도 하고 적응력도 뛰어나다"라고 말했다. "외국어 몰입 학습은 두뇌가 모국어를 인식하고 처리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녀는 캐나다로 이주해 성인기에 영어를 배운 이탈리아인들을 연구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일련의 이탈리아어 문장을 보면서 문법적 오류를 찾아내야 했다. 연구진은 그들의 뇌파를 측정했고, 이탈리아에서 살며 이탈리아어만 사용하는 이들과 그 결과를 비교했다. 카스파리 안은 "네 가지 형태의 문장이 있었고 그중 둘은 이탈리아어와 영어에서 모두 문법적으로 문제가 없었다"며 "나머지 둘은 오직 이탈리아어 문법으로만 옳았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들 중에 이탈리아어로 정확한 문장이지만 영어 문법과 맞지 않은 것을 문법적으로 부정확하다고 판단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리고 영어 실력이 좋고 캐나다에서 오래 살았으며 이탈리아어를 덜 사용할수록, 정확한 이탈리아어 문장을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컸다.
뇌 활동 패턴에서도 흥미로운 점이 발견됐다. 연구팀이 문법적으로 이탈리아어로만 맞는 문장을 보여줬을 때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이들과 캐나다로 이주한 이탈리아인들의 뇌 활동 패턴에서 차이가 나타났다. 카스파리 안은 사실 캐나다로 이주한 이탈리아인들의 두뇌 활동은 영어 사용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것과 비슷하다며, 이들의 두뇌는 이탈리아에 있는 이들과 다르게 문장을 처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카스파리 안은 영어는 이탈리아어보다 단어 순서 의존도가 더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민자들이 이탈리아어를 읽으면서도 영어의 문법 단서에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생애 대부분의 기간 동안 사용했던 모국어조차도 바뀔 수 있다"라고 말했다. 몰입은 최고의 외국어 학습법이지만, 일시적으로 모국어를 희생시킬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다중 언어 사용자들은 모국어 문법을 제대로 구사한다. 하지만 카스파리 안 등의 연구는 우리의 언어가 생애 과정에서 변화하고, 적극적으로 경쟁하며, 서로 간섭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한 간섭 속에서 중심을 잡는 게 성인이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해결해야 할 난제다. 일리노이 주 노스웨스턴 대학의 언어학과 교수인 매트 골드릭은 "새로운 언어로 말을 할 때마다 다른 언어가 '이봐, 나도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라고 말하는 셈"이라고 했다. "평소에는 억제할 필요가 없는 고삐를 당기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냥 (언어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와 버려요. 그렇다고 포기할 이유는 없어요. 자동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어렵지만, 우리가 익혀야 하고 터득할 수 있는 기술이죠." 골드릭은 "배우려는 언어에 몰입하는 것은 다른 언어를 강하게 억제하는 맥락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새로운) 언어가 더 강해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일부 연구는 다중 언어를 구사하게 되면, 멀티태스킹 능력도 향상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리고 그러한 몰입 경험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면 당신은 경쟁하는 언어들을 잘 관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지만, 계속된 훈련을 통해 언어 관리에 능숙해질 수 있습니다." 어쨌든 언어 사용은 분명 인간이 성장하며 습득하는 복잡한 활동 중 하나다. 그런데 여러 언어를 관리하는 것은 인지적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연구들도 있다. 어떤 연구들은 이중 언어 사용자가 직관에 반하는 정보에 집중해야 하는 활동 등에서 높은 성과를 보인다고 주장한다. 다중 언어 구사가 치매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늦추는 것과도 관련 있다는 연구도 있다. 물론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라는 사회적 이익을 준다. 하지만 나의 경우, 다국어 구사는 부끄러움까지 모면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나는 그날의 우발적인 실수 이후, 그 빵집을 다시 찾지 않았다. 어쩌면 이 때문에 다른 빵집들을 찾아다니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페이스트리보다는 언어 통제를 연습한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건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강] 건강한 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10가지 식품 (0) | 2023.06.14 |
---|---|
[건강] 40대 중반 걸음 느리면 신체, 두뇌 노화 의심해야(건강) (0) | 2023.06.14 |
[뇌 건강 관련 자료] 뇌 발달: 인간의 두뇌를 바꿀 수 있을까? (0) | 2023.06.14 |
[건강] 근육, 지구력, 피로, 간 기능 등 'BCAA'의 효능 및 부작용 (0) | 2023.06.13 |
[건강] 불안 / 우울, 수면, 염증, 뇌 기능, 염증, PMS 등에 도움 'GABA(가바)'의 효능 및 부작용 (0) | 2023.06.13 |
댓글